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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 없는 ‘속도전’, 갈등만 키운다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6년 03월 19일(목) 15:20
경주시의회가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 (i-SMR) 유치를 위한 동의안을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키면서 지역 사회가 거센 후폭풍에 휩싸이고 있다. 원자력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정책 결정이었지 만, 정작 시민적 합의 과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시의회는 지난 18일 제296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후보부지 유치 동의안’을 재석 의원 2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경주시는 이달 말까지 한국수력원자력(한 수원)에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고 본격적인 유치전에 뛰어들 전망이다.
경주시가 내세운 구상은 분명하다. 월성원자력본부 내 부지에 i-SMR을 건설 하고, 이를 기반으로 연구·교육·산업이 결합된 원자력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침체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미래 에너지 산업의 거점 도시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결정했느냐’에 있다.
이번 동의안은 상임위원회와 본회의를 불과 일주일 만에 통과했다. 공청회나 주민투표, 여론조사 등 실질적인 시민 의견 수렴 절차는 없었다. 지역의 환경과 안전, 경제 구조를 수십 년간 좌우할 사안을 이처럼 신속하게 처리한 것은 대의기관으로서 책임 있는 결정 과정이 라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i-SMR은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의 기술이다. 정부와 산업계는 안전성과 경제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운영 사례가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주민이 느끼는 불안은 결코 가볍지 않다. 기술적 낙관론만으로 지역 사회의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인식이다.
이 같은 절차적·기술적 논란 속에서 환경단체의 반발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은 즉각 성명을 내고 “시민 의견을 외면한 채 핵산업계의 이익을 선택했다”고 비판하며, 지방 선거에서 찬성 의원들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본회의 당일 의회 앞에서는 반대 시위가 벌어졌 고, ‘공론화 없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 사안이 더욱 민감한 이유는 경주가 이미 대표적인 원전 밀집 지역이라는 점이다. 월성원전을 비롯한 기존 시설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장기간 감내해온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원전 유치는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라 ‘위험의 재분배’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시의회가 단 한 명의 반대 없이 만장일치로 동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오히려 정치적 부담을 키우는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사안일수록 의회 내부에서조차 충분한 토론과 이견 표출이 있어야 하지 만, 이번 결정에서는 그러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경주시 역시 “향후 설명회를 통해 주민 수용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절차가 뒤바뀐 접근이다. 사전 논의 없이 결정을 내려놓고 뒤늦게 설득에 나서는 방식으로는 오히려 불신만 키울 가능 성이 높다.
에너지 정책은 속도가 아니라 신뢰가 핵심이다. 특히 원자력과 같이 위험 인식이 큰 분야일수록 공론화 과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주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정책은 결국 추진 과정에서 더 큰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경주시와 시의회는 절차적 정당성을 보완하는 데 나서야 한다.
공청회, 주민 의견 수렴,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i-SMR 유치 추진은 지역 발전의 동력이 아니라 갈등의 불씨로 남게될 것이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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