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해수 | | ⓒ 황성신문 |
-지난호에 이어 십수 년간의 발굴조사(發掘調査)를 한 결과 자기류(瓷器類)와 전돌류, 토기(土器)와 목간, 금속유물(金屬遺物)과 지진구(地鎭 具) 등의 많은 유물(遺物)이 출토되었는데 지진구(地鎭具)는 초석(礎石)을 세우기 전땅의 나쁜 기운을 억누르기 위한 의식용(儀 式用) 유물로 신라시대 지진구(地鎭具)를 땅에 묻는 것에 관해서는 연구(硏究)할 숙 제(宿題)가 많다. 함께 출토(出土)된 중국의 청자(靑瓷)와 백자(白瓷) 등은 당나라와의 교역(交易)도 짐작하게 한다. 인왕동(仁旺洞)은 101년 신라 5대 파사 왕(波娑王) 22년에 건축한 궁궐(宮闕)과 왕성(王城)인 월성(月城)을 중심으로 낭산(浪 山)과 도당산(都堂山)과 남산(南山), 그리고 선도산(仙桃山)이 근거리(近距離)에서 둘러싸고 있는 명당(明堂)으로 토함산(吐 含山)에서시작하는 사등이천(史等伊川)이 동네 가운데에 있는 남천(南川) 또는 문천 (蚊川)이라하는 거랑을 이루어 영일만으로 흐르고 있다. 인왕(仁旺)은 원래 남천(南川)과 인용사 (仁容寺) 주변 마을로 조선후기(朝鮮後期) 에는 경주군 부내면(府內面)에 속한 지역 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기리(新基里)와 교리(校里), 내동면(內 東面)사리(沙里) 등의 각 일부를 분할(分 割)하고 통합(統合)하여 인왕리라 하였다. 1955년경주시로 승격(昇格)하면서 경주시 인왕동이 되었는데 인왕동(仁旺洞)은 법정동이고행정동은 월성동(月城洞) 관할이 다. 구황동(九黃洞)과는 정상(頂上)이 경계인 황복산(黃福山:106m)이 있고 부채골과 왕장골 등의 골짜기, 그리고 비두거리와 비석 걸, 새테, 애내기마실, 양지말, 서당마을 등의자연마을이 있다. -다음호에 이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