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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동(仁旺洞)일대는 사로6촌(斯盧六村)중 정지백호 (鄭智伯虎)의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이였다.(5)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6년 04월 17일(금)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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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해수 | | ⓒ 황성신문 | -지난호에 이어 월성마을은 반월성(半月城)과 안압지(雁 鴨池) 사이 일대에 있었던 마을로 월성리 (月城里)라고도 했는데 일부(一部)는 동궁 (東宮)과 월지(月池) 내에 편입(編入)이 되었고 또 일부(一部)는 반월성(半月城) 해자 (垓子) 발굴 시 철거(撤去)되었다. 월성마을인 인왕동 490-3번지에는 임진왜란(壬辰 倭亂) 때 경주읍성을 탈환(奪還)한 경상좌 절도사(慶尙左節度使)를 역임한 이름은 의 장(儀狀)인 박무의공 수복 동도비(朴武毅 公收復東都碑)가 높이 2.3m인 화강암(花崗 岩)으로 1861년 철종(哲宗) 12년에 세워져 있었는데 철거(撤去)하여 황성공원(皇城公 園)으로 옮겼다. 인왕동 517번지에 남북(南北)의 길이가약 190m이고 동서(東西)로 폭이 가장 넓은 곳이 150여 m인 안압지(雁鴨池)가 있다. 674년인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 14년에 만들어서 월지(月池)라 했는데 조선시대 부터 안압지(雁鴨池)라 불렀다. 삼국(三國) 을 통일(統一)하고 못을 만들었는데 못 가운데에 중국(中國)의 무산십이봉(巫山十二 峰)처럼 만들어 각종(各種) 아름다운 나무와 고운 꽃을 심고 진귀(珍貴)한 새와 짐승도 키웠다. 인왕동 29번지에 1929년에 박광렬 군수가 발의(發意)해 세운 정자(亭子)인 임해정 (臨海亭)이 있었는데 황성공원(皇城公園) 독산 앞에 옮겨서 호림정(虎林亭)이라 이름도 고쳤다. 임해전(臨海殿) 터는 제30대 문무왕(文 武王)이 월지 내(月池內)의 산(山)에서 구름다리로 하여 궁전(宮殿)으로 오가도록 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신라 제56대 경순왕 (敬順王)이 연회(宴會) 도중에 고려 태조 (高麗 太祖)에게 신라를 넘기겠다고 발표 (發表)하여 울음바다가 되었고 왕건(王建) 과 그 일행(一行)도 경순왕(敬順王)을 위로 (敬順王)하려고 수십일을 머물렀다 하며 마의태자(麻衣太子) 일(鎰)도 통곡(痛哭)을 하고 개골산(금강산)으로 들어가 삼베옷을 입고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延命)했 다고 한다. -다음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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