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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동(仁旺洞)일대는 사로6촌(斯盧六村)중 정지백호 (鄭智伯虎)의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이였다.(11)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6년 06월 19일(금)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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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해수 | | ⓒ 황성신문 | -지난호에 이어 박물관(博物館) 서쪽, 즉 통일신라시대(統 一新羅時代) 남궁(南宮)에서 남산으로 가는 교량(橋梁)이었던 일정교지(日精橋址)와 교동에 있는 월성(月城)과 남산을 연결하는 교량인 월정교지(月精橋址)의 건립 시기는 760 년인 제35대 경덕왕(景德王) 19년이고 이들은 각각 해와 달을 상징하는 일정교(日精橋) 와 월정교(月精橋)로 이름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며 효불효교(孝不孝橋)나 칠성교(七星 橋)는 조선시대(朝鮮時代)에 구전으로 전해 오던 전설(傳說)과 함께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推測)된다. 일정교지(日精橋址)는 인왕동 921-1번지 하천변(河川邊)으로 인왕동 354-2번지 앞거 랑에 있다. 시대(時代)에 따라 춘양교(春陽橋) 는 일정교(日精橋), 효불효교(孝不孝橋),칠성 교(七星橋) 등으로 불려 왔다. 삼국사기(三國 史記)에 따르면 춘양교(春陽橋)라고추정(推 定)되며 사적 제10호로 동과 서편 교대(橋臺) 와 날개벽의 3개소는 배같이 생긴 모양(模樣) 의 교각(橋脚)이다. 길이는 최소 55m이고 상판의 너비는 최소 12m이며 높이는 5m 정도로 추정(推定)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전설(傳說)은 신라시대(新羅時代)에 7형제를 둔과부(寡婦)가 살았는데 밤마다 아들들이 잠들 기를 기다려서 정분(情分)이 통한 사내를 만나기 위해 문천(蚊川)거랑을 건너갔다가 새벽 이면 되돌아오곤 하였는데 이를 알아차린 아들들이 찬물을 건너는 어머니를 위해 서로 의논(議論)하여 편하게 다닐수 있도록 돌다리를 놓으니, 어머니가 부끄럽게 여겨 뉘우치고는두 번 다시 사내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에게는 효도(孝道)하는 것이나 죽은 아버지에게는 불효(不孝)가 된다고 하여 효불효교(孝不孝橋)라 불렀다고 하며 또한 일곱 명의 형제(兄弟)가 놓은 다리라 하여 칠자 교(七子橋) 또는 칠성교(七星橋)라고도 하나 쑥기떡(수수떡)장사를 하는 홀어머니라 하여 쑥기떡(수수떡) 에미다리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위(周圍)에 흩어져 있는 돌더미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영험(靈驗)이 있다고 하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낙네들이 제물(祭 物)을 차려 촛불을 켜고 소원(所願)을 빌기도 했다. -다음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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