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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동(仁旺洞)일대는 사로6촌(斯盧六村)중 정지백호 (鄭智伯虎)의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이였다.(12)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6년 06월 26일(금)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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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해수 | | ⓒ 황성신문 | -지난호에 이어 박물관(博物館) 남쪽으로 30여 m의 거리에 깊게 파인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곳인인왕동 947번지 일대(一帶)에 길이가 260여 m, 폭이약 50m 정도인 옥곡(獄谷)이 있는데 신라시대 (新羅時代)에 반월성(半月城)을 쌓으려고 이곳의 흙을 파서 사용(私用)했다고 한다. 밤만 되면 귀신(鬼神)들이 나와 설쳐서 마을 사람 들이 잠을 이룰 수 없으므로 탈을 쓰고 밤새도록 북과 꽹과리를 쳤더니 귀신(鬼神)이 나타 나지 않았다고 하며 이 골짜기를 메우면 마을 사람들의 기(氣)가 꺾이고 복(福)이 나간다고 하여 그대로 두고 있다고 하는데 옥골, 또는 인왕리 구디(구덩이)라고도 한다. 옥골 남쪽들을 옥다루들 또는 옥다리들이라고도 한다. 양지(陽地)마을은 인왕동 117번지 일대(一 帶)로 고 미술가(美術家) 이면서 향토사학자 (鄕土史學者)인 고청 윤경렬 선생의 생가(生 家)터가 있는데 고청 생활관으로 만들었으며 바로 옆에는 고청기념관을 개관(開館)했다. 집 앞에 문천거랑이 동내를 안고 흘러가고 있고 뒤편은 경부고속도로(京釜高速道路) 경주 IC(Interchange) 진입도로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專用道路)지만 집 뒤가 높게 언덕과 같이 비탈면을 이루어 소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어서 생시(生時)에 명당(明堂)이라고 늘자랑하던 곳이기도 한데 마을 전채가 남향으로 양지(陽地) 바르다. 음지(陰地)마을은 인왕동 257 번지가 고 최햇빛 한글학자가 편의점(便宜店)을 운영하여 생계(生計)를 꾸려가던 곳이다. 키(key)라고 해야만 열리고 열쇠라고 하면 열리지 않느냐며 평생 한글 사랑 운동을 권유(勸誘)하였다. 이 일대(一帶)가 서쪽과 남쪽이 남산자락이어 서 양지(陽地)마을에 비해 해가 일찍 저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으나 최햇빛 한글학 자가 해맞이마을이라고 개칭(改稱)했다. 왕정골은 왕정곡(王井谷)이라고도 하며 인왕동(仁旺洞)과 교동(校洞), 그리고 탑동(塔 洞)에 걸쳐 있는 골짜기이다. 왕정골 제1사 지를 인용사지(仁容寺址)라고 하며 제2사지는 남산의 정상(頂上)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산맥(山脈)의 제일 첫 번째 계곡으로 그 초입에 최치원(崔致遠)의 상서장(上書莊)이 있고 왼편으로는 도당산(都堂山)이 솟아 있다. 이 골짜기 입구(入口)에서 200m쯤 되는 곳에옛 절터가 있다. 왕정(王井)이라는 샘과 왕장 군(王將軍) 혹은 왕정승(王政丞)의 무덤이라는 고분(古墳)이 있었다고 하는데 도굴(盜掘) 이 되어 버려서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도당산(都堂山)의 서쪽 기슭 왕정골에는 천관사지(天官寺址)가 있다고 하므로 반월성 (半月城) 남쪽 남산자락의 동과 북, 서쪽을 전부(全部) 왕정골이라고 하는 것 같다. -다음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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