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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동(仁旺洞)일대는 사로6촌(斯盧六村)중 정지백호 (鄭智伯虎)의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이였다.(13)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6년 07월 10일(금)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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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해 수 | | ⓒ 황성신문 | -지난호에 이어 경주남산성(慶州南山城)은 인왕동 산 48-2 번지 외 약 10필지에 걸쳐 조성(造成)되어있 으며 가로 50㎝이고 세로 20㎝ 정도로 돌을잘 다듬어 쌓았으며 길이가 약3,750m이고 높이는 약 2m지만 대부분(大部分) 무너져 있는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591년인 제 26대 진평왕(眞平王) 13년에 남산성(南山城) 을 쌓으니 주위 2,854보(步)였다고 하였으며 663년인 제30대 문무왕(文武王) 3년에는 남산신성(南山新城)에 장창(長倉)을 건축했다고 전한다. 1935년에서 1994년까지 9개의 남산 신성비(南山新城碑)가 발견되었다. 남산신성 비(南山新城碑)에는 신해년(辛亥年) 2월 26일 남산 신성작절여법 이작후3년붕파자죄교사위 문교령서사지(辛亥年二月卄六日南山新城作 節如法 以作後三年 崩破者 罪敎事 爲聞敎令 誓事之)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는 신해년(辛亥 年) 2월 26일에 남산신성(南山新城)을 쌓을 때법(法)과 같이 3년 안에 붕괴(崩壞)되어 무너 지면 벌(罰)을 준다는 교시(敎示)가 있다. 남산성(南山城)과 남산신성(南山新城)이라는 서로 다른 이름이 있는데 이는 남산성(南山 城)을 쌓은 것은 신해년(辛亥年)인 진평왕(眞 平王) 13년이므로 그전부터 있었던 남산성(南 山城)을 진평왕(眞平王) 13년에 보수(補修)했 거나 개축(改築)하여 신성(新城)이라 하였거나 아니면 석성(石城)인 남산신성(南山新城) 에서 약 500m 앞에 있는 남산토성(南山土城) 을 남산성(南山城)이라 하여서 토축(土築)인 남산성(南山城)과 석축(石築)인 남산신성(南 山新城)은 별개(別個)라는 설(說)도 있다. 아무튼 성안에는 좌창(左倉)과 우창(右倉), 그리고 중창(中倉)의 창고(倉庫)가 있어 무기(武器)와 곡식(穀食)을 저장하였다고 하며 지금도 창고 (倉庫) 자리에서 불에 탄 쌀이 나오기도 한다. 왕정골의 동남쪽 인왕동 산 48-2번지의 남산성(南山城) 아래에 있는 골짜기로 순라군 (巡羅軍)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라 하여 술랫 골이라고 한다. -다음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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