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시 행정이 신뢰의 시험대에 섰다. 경주시체육회와 경주문화원의 계좌 압류 사태는 각각 다른 원인에서 비롯됐지만, 공통적으로 경주시와 유관기관의 안일한 대응이 문제를 키웠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경주시체육회는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과 관련한 손해배상금 문제로 계좌가 압류됐다. 법원이 경주시의 직접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시민 들이 느끼는 도의적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건은 경주 체육계에서 벌어졌고, 체육회는 지역 체육 행정의 한 축을 맡아왔다. 그런데 배상 문제는 장기간 해결되지 못했고, 그 결과 유가족과 피해 자는 물론 지역 행사 대행업체까지 2차 피해를 입는 상황이 됐다. 경주문화원 사태도 다르지 않다. 국유 재산 사용 문제는 하루아침에 불거진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 무상사용과 유상대 부, 변상금 부과 문제가 반복됐음에도 경주시와 문화원은 명확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14억 원이 넘는 변상금과 계좌 압류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경주의 문화 정체성을 상징하는 기관이 기본적인 재산 사용 문제조차 정리하지 못했다는 점은 행정 신뢰를 크게 훼손한다. 시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제가 커질 때까지 방치하다가 계좌가 압류된 뒤에야 법률 검토와 지원 방안을 말하는 행정 방식 때문이다. 체육회에는 “지원 근거가 없다”고 선을 긋고, 문화원 에는 공공성을 이유로 지원 가능성을 검토한다면 형평성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두 사안의 법적 성격이 다르다는 설명만 으로 시민의 의문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 다. 경주시는 지원 여부보다 먼저, 왜 이런 상황이 되도록 관리하지 못했는지부터 답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민선 9기 출범 첫날 열린 대규모 취임식은 시민 눈높이와도 어긋났 다. 지역 유관기관의 계좌가 압류되고, 소상공인과 시민들은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600여 명이 참석한 축하 행사와 공연, 퍼포먼스가 과연 필요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3선 시장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무거운 책임감이다. 물론 취임식 자체가 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기와 방식은 중요하 다. 경주시가 처한 현실을 고려했다면 더조용하고 낮은 자세의 출발이 필요했다. 시민들이 기대한 것은 박수와 조명이 아니라 체육회와 문화원 사태에 대한 설명, 재발 방지책, 공직사회에 대한 엄정한 관리 의지였다. 경주시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책임 회피가 아니다. 체육회와 문화원 사태의 경위, 행정 대응 과정, 관리·감독의 허점, 향후 재정 부담 가능성을 시민 앞에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또한 유관기관의 법적·재정적 위험을 사전에 점검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문제가 뒤로 밀리고, 기관 간 책임 떠넘기기가 반복되는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민선 9기의 출발은 이미 흔들렸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기회는 있다. 경주시는 “법적 책임이 없다”는 말 뒤에 숨지 말고, 공공 행정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압류된 것은 체육회와 문화원의 계좌만이 아니다. 시민들이 경주시 행정에 보냈던 신뢰도 함께 묶였다. 그 신뢰를 풀어내는 일은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책임 있는 설명과 실질적인 수습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