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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이제 대중 앞에 서다 | | ⓒ 황성신문 |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 황성신문 | 나는 늘 입버릇처럼 발하는 것이 있다. “나는 겨자씨만큼 작은 지식이라도 알고 있는 것은 남에게 그냥 가르쳐 주고 싶다.” 교육대학 다닐 때 노교수는 남학생들에게 늘 말버릇처럼 말하였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 하였다. 처음에는 “송충이가 솔잎 먹지. 왜 다른 것 먹을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교육대학 졸업하고 교사 발령 받고 보니 1/3이 교직을 떠나 버렸다. 솔잎 안 먹고 산다는 말이다. 흘리고 들었던 말이 일생 못 떠난 말이다.
나도 교직 버리고, 옛날처럼 교탁 앞에 서는 것이 그리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늘 머리 한 부분에서는 그렇게 생활하고 싶었던 여러 장면이 수시로 떠오르거나 꿈에도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 자주 나타나고 하였다. 한편은 못다 한, 문학의 쏠림현상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행정조직 속에서의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였다. 언제인가 제2 직업(교육행정)도 버려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가득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정년까지 3년 두고 명퇴하였고, 내내 문학에 길들이며 이를 위해 흠뻑 빠져 보았다.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꼬박 밤새워 글을 써대고 하였다.
가장 근접하기 좋은 것이 교직 생활 하였던 것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그것이 문학 장르 중에 “수필(隨筆)”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8년 교직 생활에서 희로애락을 밤낮으로 찾아 쓰기 시작하였다. 240여 편이 모이었다. 그러고도 2년을 더 노력하였다. 360편을 더하여 600여 편이 되었다. 망설임 없이 지방 문예잡지에 공모하여 수필가로 등단(2012년)하였다.
수필가 등단 면허증(?)을 받고, 수필을 여러 군데 공모하여 작은 상까지 받았다. 또 공모하고 상 받고, 반복하여 재미난 일에 너무나 흠뻑 빠졌다. 수필을 쓰자면 이제 수필 이론이다. 또 3년간 여섯 학기를 새로 공부하였다. 이제 글제만 있으면 글을 써 버릇할 수 있다. 요즘 스스로 정한 글제에 따라 글쓰기 시작한다. A4 한 장의 주제를 ㄱ자부터 ㅎ자까지 1,875편의 산문시로 기억처럼 써 모았다. 언제라도 사전 순의 자모에 따라 찾으면 수필 소재인 화소(話素)가 바로 나올 수 있다.
이제 산문으로 영역을 넓히어서 “논픽션”에 다가갔다. 두 번의 상도 받았다. 아울러 자서전 영역에도 도전한 것이다. 자서전은 개인사를 개인이 써서 아우른다.
산문에 자신이 생기면 저절로 소설 장르로 들어갈 수 있다. 구성과 묘사의 훈련된 능력에서 문장은 날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 습작도 몇 편인가 하여 두었다. 소설가를 꿈꾼다. 희망 사항이다.
이제 늘그막에 이르렀다. 그러나 2020년 7월 9일 목요일 오전 10시에 마침내 수필로 특강하는 강의에 서다. 에둘러 나는 이제 비로소 남의 앞에 다시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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