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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校洞)은 신라(新羅) 최초의 최고(最高) 국립교육기관(國立敎育機關)인 국학(國學)이 있었다.(2)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6년 08월 07일(금)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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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
 |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해수 | | ⓒ 황성신문 | 이곳에서 조선말엽(朝鮮末葉)까지 많은 학자(學者)와 정치인(政治人)들이 나왔고 도의정신(道義精神)과 사회정의(社會 正義)의 근원지(根源地)가 되었고 사회(社 會)의 부조리(不條理)와 부도덕적(不道德 的)인것을 교화(敎化)하는 역할(役割)도 했으며 왕(王)들이 때때로 대성전(大成殿) 을 참배(參拜)한 후 유생(儒生)들을 격려 (激勵)하기도 했고 왕세자(王世子)가 입학 (入學)할 때에는 고대(古代) 향교(鄕校)에서 실시하던 제사의식(祭祀儀式))으로 삼례(三禮, 세 가지 예) 중 군사(君師)에 해 당하는 문묘(文廟)에 석전례(釋奠禮)를 올리기도 하였다. 문묘영역(文廟塋域)은 대성전(大成殿)을 중심으로 전면에 신삼문(神三門), 좌우에 동서무(東西廡)가 별도의 담장으로 갈라 경계를 만들어 제향공간(祭享空間)을 만든다. 명륜당(明倫堂)은 경주향교(慶州鄕校)에서 향교의 유생(儒生)들이 학습하고 생활(生活) 하는 건물로 명륜당(明倫堂)과 동서재(東西 齋)를 포함하는 강학당(講學堂)은 대성전(大 成殿)의 제향건물(祭享建物)보다 낮게 건축 (建築)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때 불에 타 없어진 대성 전(大成殿)을 중건(重建)하였고 1614년인 조선(朝鮮) 제15대 광해군(光海君) 6년에 이안 눌(李安訥) 부윤(府尹)이 명륜당(明倫堂)과 동서재(東西齋)를 개축(改築)하였다. 송단(松壇)은 명륜당(明倫堂) 북쪽에 있다. 1601년인 조선(朝鮮)의 제14대 선조(宣祖) 34년에 손기양(孫起陽) 향교(鄕校)의 보호육 성(保護育成)을 위하여 8도(八道)의 감사(監 司) 밑에 두었던 관직인 제독관(提督官)이 향교(鄕校)에서 유생(儒生)들을 가르치면서 틈이나면 남산에서 소나무를 캐어와서 향교 외삼문(外三門) 밖과 명륜당(明倫堂) 뒷뜰에 심었다. 사부(師傅) 정극후(鄭克後)가 지은 송단 기(松壇記)에는 “송단(松壇)의 소나무가 무성 (茂盛)하면 유학(儒學)은 융창(隆昌)할 것이고 소나무가 부러지거나 말라 죽으면 쇠락(衰 落)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래(元來)의 송단(松壇)은 향교(鄕校) 뒤뜰 뿐 아니라 담 너머 내물왕릉(奈勿王陵)앞의 솔숲까지 포함 (包含)하여 향교(鄕校)의 뒤를 보(補)하는 보호림(保護林)이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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