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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校洞)은 신라(新羅) 최초의 최고(最高) 국립교육기관(國立敎育機關)인 국학(國學)이 있었다.(3)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6년 08월 14일(금)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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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해수 | | ⓒ 황성신문 | -지난호에 이어 존경각(尊經閣)은 명륜당(明倫堂) 뒷편의 송단(松壇) 동쪽에 위치해 있는 정면(正面) 2칸이며 측면(側面) 1칸의 건물(建物)인데 1669년인 조선(朝鮮) 제18대 현종(顯宗) 10 년에 민주면(閔周冕) 부윤(府尹)이 지었으며 1989년에 복원(復元)하였다. 민주면(閔周冕) 부윤(府尹)이 임해전(臨海殿)의 섬돌을 가져 와서 명륜당(明倫堂)의 층계(層階)도 만들고 길도 보수(補修)했다고 한다. 교동고분군(校洞古墳群)은 향교(鄕校) 뒤 인 교동 14번지 일대(一帶)에 있으며 10여 기의 크고 작은 고분(古墳)과 함께 삼국유사(三 國遺事)에 첨성대(瞻星臺) 남서쪽에 있다는 신라 제17대 내물왕릉(奈勿王陵)도 있다. 일제강점기(日帝強占期)때와 1973년에 서울대학교 박물관(博物館)에서 일부(一部)를 발굴(發掘)과 조사(調査)를 하였는데 신라(新 羅)특유(特有)의 돌무지덧널무덤인 적석목곽 분(積石木槨墳)에서 5세기로 추정(推定)되는 소형금관(小型金冠)이 출토(出土)되었는데 관(冠)테의 지름이 14cm로 적어서 금령총(金 鈴塚)에서 출토한 금관(金冠)과 같이 소년용 (少年用)일것으로 추정(推定)된다. 경주 계림(慶州 鷄林)은 경주시 교동 1번 지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9호로 지정 (指定)되었으며 23,023㎡이다. 성스러운 숲이란 뜻으로 시림(始林)이라 불렸는데 닭과 관련된 신라(新羅) 왕성(王姓)인 김씨(金氏)의 시조(始祖) 김알지(金閼智)의 탄강(誕降)설화 후에 닭이 우는 숲이란 뜻의 계림(鷄林)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후(後)에 국명(國名)으로도 쓰였다. 물푸레나무, 홰나무, 휘추리나무, 단풍나무 등의 약100여 주의 고목(古木)이 울창 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60년인 신라(新羅) 제4대 탈해왕(脫解王) 4년 8월 4일 밤 반월 성(半月城) 서쪽 마을옆 숲속에 광명(光明)이 비치는 황금(黃金) 궤(匭)짝이 있고 흰 닭 한마리가 소리높여 울고 있는 것을 발견(發見) 한 호공(瓠公)이 탈해왕(脫解王)에게 고(告) 하여 즉시 숲으로 가 보니 궤(匭)짝안에 사내 아이가 있어서 알지(閼智)라 했고 금궤(金匭) 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이라 하였다라는 기록(記錄)이 있다. 신라(新羅)의 신성한 숲이라 하여 현재까지 보존(保存)되어 오고 있으며 l803년에 세운 비(碑)도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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