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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校洞)은 신라(新羅) 최초의 최고(最高) 국립교육기관(國立敎育機關)인 국학(國學)이 있었다.(4)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6년 08월 28일(금)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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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해수 | | ⓒ 황성신문 | -지난호에 이어 계림비각(鷄林碑閣)은 1803년인 조선(朝 鮮) 제23대 순조(純祖) 3년에 세운 6각형 비각(碑閣)으로 김성걸(金成杰) 참봉(參奉)이 주청(奏請)하여 건립(建立)하게 되었는데 높이는 111㎝이고 너비는 39㎝이며 두께 또한 17㎝이다. 남공철(南公轍) 영의정(領議政)이 비문(碑文)을 짓고, 최헌중(崔獻重) 경주부윤 (慶州府尹)이 글씨를 썼다고 하는 경주 김알지 탄생기록비(慶州金閼智誕生記錄碑)인데 경주김씨 시조 김알지(金閼智)의 탄생설화 (誕生說話)와 김씨 왕가(王家)의 계보(系譜) 및 비문(碑文)을 쓰게 된 동기(動機) 등이 내용(內容)이다. 계림(鷄林) 경내에 신라(新羅) 35대 경덕왕 (景德王) 때의 승려(僧侶) 충담사(忠談師)의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를 1986년 경주시에서 향가비(鄕歌碑)라 이름하여 세웠는데 심천 (心泉) 한영구(韓永久) 문장가(文章家)가 글씨를 썼다. 교동(校洞) 69번지 일대(一帶)에 경주최 씨고택(慶州崔氏古宅)은 12대째 대대로 살고 있는 종가댁(宗家宅)을 비롯하여 소종가 (小家宅)의 전통한옥(傳統韓屋)들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이다. 12대 만석군(萬石君)에 9대 진사(進士)를 지낸 영남지역(嶺南地域)에 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程度)의 명문대 가(名門大家)이다. 종가댁(宗家宅)은 사랑(舍廊)채와 안채와 대문(大門)채 등이 있는데 그 중 문간 (門間)채라고도 하는 대문(大門)채는 중요 민속자료 제27-1호로 지정(指定)되어 있고 작은 방과 중요민속자료 제27-2호 창고(倉庫)인 큰 곳간도 있다. 벽(壁)은 햇빛이 잘 들고 통풍(通風)이 잘 되도록 판벽 (板壁)으로 되어 있으며 박공(牔栱) 부분인 지붕 양쪽 옆면에 바람막이판을 달아 고풍(古風)스럽기까지 하다. 문간(門間)채 에는 솟을대문(大門)을 두고 머슴의 방과 곳간이 네 칸있는데 곳간에 따라 넣은 물건(物件)도 달랐을것으로 생각되는 문(門) 의 모양이나 크기가 다 다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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