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99. 나 태어남의 기쁨
보랏빛 엽서수필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6년 08월 28일(금) 15:20
|
|
|  | | | ↑↑ 생애 최대 행복한 국민학교 입학 | | ⓒ 황성신문 |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 황성신문 | 이제까지 나의 태어남을 기쁜 탄생이 아니라 괴로운 탄생으로 묘사하고 말았다. 이제라도 태어남은 괴로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맞아 들이고 싶다. 그렇다.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남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부모님으로부터 얻은 사랑의 결실이 바로 나의 출생이고, 나의 태어남은 기쁨이 아니겠는가? 탄생은 최소 1억 5천만 마리 이상의 정자가 경쟁하여 단 한 개뿐인 난자와 결합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다르겠지만 오로지 하나만이 만나야 탄생한다. 그것도 좋은 날, 좋은 시간에 이웃, 친지들의 박수 받고 혼인한 후 얻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든가?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나이기에 세상의 고난과 체험으로 얻은 실체이다. 무릇 인간은 태어남으로 기쁨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새끼로 금기 두르고 액땜 방지하여 자라나 첫돌 맞이한다. 어린 날 그때는 아무런 나의 기억이 소환되지 못하지만 아무런 탈없이 이렇게 잘 살아오지 아니하였는가? 태어난 이듬해에 6ㆍ25전쟁이 일어났다. 어린 나로서는 기억이 없다. 어른들의 말씀과 역사를 배웠으니 그렇게 알고 있다. 세 살 때부터 어렴풋한 기억은 전쟁터 후방 에서 미군들이 주둔하였다. 미군이 쓰리쿼터 타고 매우 자랑스럽게 어린 우리에게 껌 던져 주었다. 그것이 처음에는 무엇인지도 몰랐다. 기분 좋은 날은 씨 레이션(C-Ration) 한 통도 공짜로 건져보았다. 배가 고팠던 그때 그 시절에는 창피한 줄 몰랐다. 위 저고리만 걸쳐 입고도 마을을 종횡무진 하며 살았다. 저고리에는 옷고름이 붙어 있어 몸을 한 바퀴 돌아와서 묶인다. 흙길에서 먼지와 흙 장난하면서 놀았다. 진흙판에다 나무 꼬챙이로 그림도 그려대면서 살았다. 그것이 즐거웠다. 국민학교 다니기 전 서당에 가서 한문 읽었다. 붓 들고 한문을 개발 세 발로 쓰고, 꿇어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며 구절 암송하였다. 그때 그 시절 나의 삶은 그렇게 채워졌다. 전쟁이 끝나고 길거리에는 군인들이 곧잘 보인다. 1957년 4월 1일 국민학교 입학식이다. 왼쪽 에다 콧수건, 오른쪽에 이름표를 삐침으로 달고, 남성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교실이 모자라 바람 부는 운동장에서 “학교 종이 땡땡땡~”, “산토끼 토끼야~”를 풍금 소리에 맞추어 따라 불렀다. 그 어려운 시절 경주불국사 사하촌 들판에서 살았다. 문화재에 오르내리며 놀았다. 1학년 소풍 가는 곳이 신라 38대 원성왕릉(괘릉) 이다. 보물찾기도 하고, 네 쌍의 사자상을 그림 그려 상도 받았다. 소풍이 아니라 원족(遠 足)이다. 어린 날 추억이 서리어있는 고향이 지금도 아리다. 어렸던 날이 그리워 지금도 그곳 찾는다. 태어남으로 기뻤다. 불국사 자하문에 오르기 위해 청운교, 백운교를 탔다. 요즘은 문화 유산법에 걸릴 일이다. 범영루 문지방 베개하고 누워 낮잠 청하였다. 인간 세상에 태어남이 즐거웠고, 인간으로 자랄 수 있어서 이 또한 기뻤다.
|
|
|
황성신문 기자 - Copyrights ⓒ황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
|
최신뉴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