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서울 삼성동을 떠나 경주에 둥지를 튼 지 10년을 맞았다. 2016 년 3월 약 1,200명의 본사 직원이 경주로 이동하면서 지역사회는 한수원이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한수원 본사 이전은 2005년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 선정 당시 경주에 제시된 주요 인센티브 가운데 하나였다. 국가 대표 에너지 공기업의 본사가 들어오면 관련 기업과 연구기관이 뒤따르고, 새로운 산업생태계가 형성될 것이라는 청사진도 제시됐다. 당시에는 ‘포항 하면 포스코, 경주 하면 한수원’이라는 목표까지 나왔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본사의 물리적 이전을 넘어 지역 경제와 산업에 실제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시점이다.
■ 원전 중심도시 위상은 높아졌다 한수원 본사 이전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경주가 국내 원전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매김했다는 점이다. 경주에는 월성원자력본부와 한수원 본사,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등 주요 원자력 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에 있던 한수원의 주요 의사결정 기능이 원전 현장이 있는 경주로 이동하면서 도시의 상징성과 위상도 높아졌다. 본사 이전을 계기로 관련 기업과 기관을 유치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한수원은 지역 협력사업과 사회공헌 활동을 확대하며 지역 사회와의 상생을 강조해 왔다. 대형 공공기관 본사가 경주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 자체가 가져온 효과는 분명하다. 그러나 한수원이 경주에 있다는 것과 지역경제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기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 시민이 체감하는 경제효과는 여전히 의문 본사와 직원이 경주로 이전했다고 지역경 제가 자동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직원들의 소비와 기업의 구매·계약이 지역 안에서 선순환하고, 협력기업과 연구개발 기능이 집 적돼야 실질적인 파급효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지역업체 계약액과 지역 생산품 구매액, 지역인재 채용, 지역 투자 등이 지난 10 년 동안 얼마나 늘었는지 시민들이 종합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한수원의 구매·용역· 행사·교육·연구개발 사업이 지역기업의 매출 증가와 기술력 향상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도 객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협력기업 유치 역시 숫자보다 기능과 질을 따져야 한다. 주소지만 옮기거나 소규모 사무 실만 설치한 기업과 본사 기능, 고급인력, 연구개발 조직, 설비투자를 실제로 이전한 기업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다르다. 경주가 진정한 원전산업도시로 도약하려면 기존 협력업체 유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원전 기자재와 정비, 해체, 안전, 수출·서비스는 물론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차세대 에너지 연구개발 기업까지 집적시켜야 한다. 한수원 본사가 있는 도시를 넘어 연구와 교육, 생산과 수출이 함께 이뤄지는 산업거점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 지역 청년에게 한수원은 ‘양질의 일자리’인가? 지역인재 채용과 청년 일자리 창출도 주요 평가 대상이다. 한수원 본사 이전이 지역 청년에게 얼마나 많은 취업 기회를 제공했는지, 지역대학과의 산학협력이 실제 채용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장학사업과 교육지원에 그치지 않고 경주 지역 대학·고교와 한수원이 공동으로 원전· 에너지 전문인력을 양성해 취업까지 연결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에서 인재를 키우고 지역에서 일하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본사 이전 효과가 장기간 축적될 수 있다.
■ 경주시도 성적표 공개해야 본사 이전의 성과와 한계를 한수원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정주환경과 교육·의 료·교통 기반을 개선하고, 기업이 투자할 산업용지를 확보하며, 연구기관과 대학을 연결 하는 것은 경주시의 몫이다. 경주시가 한수원 본사 이전을 지역발전의 지렛대로 활용할 장기 전략을 얼마나 충실하게 추진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특히 한수원과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을 연계한 ‘경주 원자력산업 클러스터’가 선언을 넘어 구체적인 성과를 냈 는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수원의 사회공헌 활동도 지역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산업적 상생으로 발전해야 한다. 지역기업의 기술개발과 인증, 실증, 판로 개척, 수출을 지원해 한수원과의 거래가 기업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 ‘한수원 경주 20년 프로젝트’ 마련해야 본사 이전 10년은 결산이자 새로운 출발 점이다. 경주시와 한수원이 가칭 ‘한수원 경주 20년 프로젝트’를 마련해 향후 10년간 기업 유치와 연구개발, 인재 양성, 청년 고용, 지역기업 구매, 정주환경 개선 목표를 공동으로 세워야 한다. 지역업체 계약액과 지역 생산품 구매액, 지역인재 채용, 투자액, 산학협력 성과 등도 매년 공개해야 한다. 구체적인 지표가 있어야 시민들이 지역 기여도를 판단하고 부족한 부분의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지난 10년이 ‘한수원 본사 경주시대’를 여는 기간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은 ‘한수원과 함께 성장하는 경주시대’가 돼야 한다. 이제는 “한 수원 본사가 경주로 왔는가”가 아니라 “한수 원과 함께 경주가 얼마나 성장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답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