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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校洞)은 신라(新羅) 최초의 최고(最高) 국립교육기관(國立敎育機關)인 국학(國學)이 있었다.(9)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6년 10월 16일(금)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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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해수 | | ⓒ 황성신문 | -지난호에 이어 1984년 11월 26일부터 1986년 9월 8일 까지 진행(進行)된 두 번의 복원설계(復元設計) 를 위한 자료수집(資料收集)과 발굴조사(發 掘調査)를 했는데 남과 북편 교대(橋臺)와 네개 소(所)는 주형(舟形) 교각(橋脚)이 있었는데 길이는 약 60.57m이며 교각(橋脚) 사이에서 불에 탄 목재편(木材片)과 기와조각이 나와서 교각(橋脚) 양면에 누각(樓閣)이 있었고 누각(樓閣)에 이어진 누교(樓橋)였을 것이라 추측하여 교량(橋梁) 양 끝에 각각 문루(門 樓)를 지었으며 문루(門樓) 2층에는 출토(出 土)된 유물전시(遺物展示)와 디지털(digital) 전시관(展示館)도 만들어서 월정교(月精橋) 의 역사(歷史)와 복원과정(復元過程)도 상영 (上映)하도록 하고 있다. 월정교(月精橋) 서쪽 아래에 나무로 만든 다리가 발견(發見)되어서 원효대사(元曉大 師)가 헛디뎌 물에 빠져 요석공주(瑤石公主) 와 인연을 이루게된 실재(實在) 월정교(月精 橋)였을것으로 추정(推定)하기도 했었다. 신라(新羅) 제35대 경덕왕(景德王)은 아버 지인 성덕왕(聖德王)의 업적(業績)을 기리기 위해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을 만들었 으며 성군(聖君)이 되기위해 덕망(德望)이 높은 승려(僧侶)에게 왕도(王道)의 가르침을 받는 것을 즐겨했다. 어느날 경덕왕(景德王)이 덕행(德行)으로 훌륭한 충담대사(忠談大師)를 모셔오라 했으나 찾지 못하고 있을때 왕(王)이 월정교(月精 橋) 누각(樓閣)에서 남산 삼화령(南山三花嶺) 의 미륵세존(彌勒世尊)과 차공양(茶供養)을 하고 돌아오는 허름한 차림의 충담대사(忠談 大師)를 만났다. 미륵세존(彌勒世尊)과 마신차(茶)를 청(請) 하자 차(茶)를 한잔 올렸다. 차(茶)의 맛이 독특(獨特)하고 그윽한 향기(香氣)가 감미(甘 味)로웠다. 차(茶)를 마시면서 백성(百姓)들을잘 다스릴수 있는 방법(方法)을 물었는데 즉석(卽席)에서 안민가(安民歌)를 지었다.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臣下)는 사랑하실 어머니다. 백성(百姓)은 어리석은 아이로 생각하신다면 백성(百姓)들이 나라의 사랑을알 것입니다. 꾸물거리며 사는 백성(百姓)들은 이를 먹임으로써 다스려져,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랴, 백성(百姓)들이 말한다면 나라가 유지(維持)될 줄을 아실 것입니다. 아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臣下)는 신하(臣下)답게, 백성(百姓)은 백성(百姓)답게 처신(處身)한다 면, 나라 안이 태평(太平)할 것입니다.” 경덕왕(景德王)이 충담대사(忠談大師)의 노래를 듣자 존경(尊敬)한 나머지 나라의 스승이 되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付託)했지만 한사코 거절(拒絕)하며 가버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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