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校洞)은 신라(新羅) 최초의 최고(最高) 국립교육기관(國立敎育機關)인 국학(國學)이 있었다.(10)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6년 10월 30일(금)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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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해수 | | ⓒ 황성신문 | -지난호에 이어 충담대사(忠談大師)는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남산 미륵세존(彌勒世尊)에 차(茶)를 대접(待接)했다 한다. 그래서 이를 본받은 경주사람들은 매년 봄, 가을에 충담재(忠談齋)를 올리며 충담대사 (忠談大師)를 추도(追悼)하고 남산 삼화령(南 山三花嶺)에서 차공양(茶供養)도 재현(再現) 하고 있다. 충담대사(忠談大師)와 삼화령(三花嶺)에서 차공양(茶供養)을 함께했던 삼존불(三尊佛) 은 국립경주박물관(國立慶州博物館)에 전시 (展示)되고 있다 천원(泉源)마을안인 교동 243번지는 천관 사지(天官寺址)인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솟아나와 흐르는 샘이 있다고 하여 천원(泉源)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청년시절(靑年時節)에 김유신(金庾信)은 천관녀(天官女)와 사랑을 하다가 어머니의 만류(挽留)로 절교(絶交)했는데 말이 술에 취한 유신(庾信)을 천관녀(天官女)의 집 앞으로 데려가자 목을 베어 버리고 냉정(冷靜)하게 돌아섰다. 천관녀(天官女)가 세상을 하직(下直)한 후 (後) 명복(冥福)을 빌어 주기 위해 천관녀(天 官女)가 살던 집에 천관사(天官寺)를 지었다 고 한다. 2000년부터 2년에 걸쳐 발굴조사(發掘調 査)를 했는데 8세기 중(中) 후반(後半)무렵인 팔각형(八角形) 탑신부(塔身部)의 탑(塔) 터가 확인(確認)되었다. 이 밖에 건물(建物)터 5곳, 문(門)터로 추정 되는 1곳, 석등(石燈) 터 1곳, 석조시설(石造 施設) 2곳, 우물 3곳과 많은 초석 적심석(礎 石積心石)도 나왔으며 금동불상(金銅佛像)과 하늘천(天)자가 새겨진 명문(銘文)기와도 출토(出土)되었다. 천원(泉源)마을 중간부분(中間部分)에 마을이 있는데 한 가운데에 있다고 하여 가무치마을 또는 간무치마을라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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