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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동(塔洞)은 도당산(都堂山) 자락의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이였고 박혁거세의 탄생지인 나정(蘿井)과 오릉(五陵)이 있는 신성(神聖)시 하던 곳이였다.(1)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6년 11월 06일(금)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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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해수 | | ⓒ 황성신문 | 탑동 91번지 일대(一帶)에 신라시대(新羅時 代) 때 담암사(曇巖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은 없어지고 절터에 큰 탑(塔)의 흔적(痕迹) 만 남아 있어 마을 이름을 탑리(塔里)라고 부른 데서 유래(由來)하였으며 경주군 내남면 (內南面) 소속(所屬)으로 있다가 1955년에 경주시 탑동(塔洞)으로 되었다. 2011년 부터 법정동(法定洞)인 황남동 소속이고 행정동(行 政洞)으로는 탑동(塔洞)이다. 담암사(曇巖寺)는 담엄사(曇嚴寺)라고도 하는데 신라시대(新羅時代) 전불칠처가람(前 佛七處伽藍) 가운데 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사위를 맞아들인 밭이라는 뜻의 서청전(壻請田) 이 있었던 사찰로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 王)때 창건(創建)되었다고 한다. 이 절은 고려중기(高麗中期)까지 7대 사찰 (寺刹)의 하나로서 중요시(重要視) 되어 왔는데 차차 쇠퇴(衰退)하여 조선시대(朝鮮時代) 에 폐사(廢寺)가 되었으며 일제강점기(日帝 強占期)때에는 사지(寺址)의 중앙을 관통(貫 通)하는 길을 내면서 파괴(破壞)하여 없애 버렸다. 사지(寺址)에는 삼층석탑(三層石塔) 1기와 당간지주(幢竿支柱), 초석(礎石) 등이 남아 있었는데 당간지주(幢竿支柱)와 초석(礎石) 등은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제전인 숭덕전(崇 德殿)을 건립할 때 사용(使用)하였으며 파손 (破損)된 탑(塔)의 팔부신중(八部神衆)은 국 립경주박물관(國立慶州博物館)에 옮겨 전시 (展示)하고 있다. 절터와 주변은 지금은 모두 오릉(五陵)입구와 공영주차장(公營駐車場)으로 바뀌었다. 지식백과사전(智識百科事典)에 따르면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은 신라초기(新羅初期) 경주지역에 있었던 사로육촌(斯盧六村)인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취산진지촌(觜山珍支 村:于珍村),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금산가 리촌(金山加利村),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 村) 등과 함께 사로육촌(斯盧六村)에 속했는데 남산(南山)의 서편인 탑동, 배동과 함께 내남면(內南面) 일대이였다고 하며 고려(高麗) 태조(太祖)는 940년에 경주부(慶州府)의 육부중 남산부(南山部)로 개칭(改稱)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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