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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나무 가로수길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19년 05월 07일(화) 15:14

 

ⓒ 황성신문
요즘 경주의 일부 가로에는 흰쌀밥을 고봉으로 수북히 담아 놓은 듯 하얀꽃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벚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꽃을 볼 수 있는 기간이 길고 순백색의 꽃이 탐스럽게 무더기로 피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가로수가 이팝나무이다.

벚꽃 가로수가 누렸던 인기가 잊혀 갈 무렵에 다시 가로의 경관을 살려주는 이팝나무는 경주의 가로수로서 훌륭한 나무이다. 예전에 태종로의 플라타너스를 이팝나무로 교체하자고 제안한 사람으로서 그 당시에 수종선택이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봄이 한창 무르익으면 공원이나 가로에 심겨있는 이팝나무에는 하얀 꽃이 가득 달린다. 처음엔 싸락눈처럼 듬성듬성 꽃이 피다가 나중엔 함박눈처럼 소복하게 나무 전체를 뒤덮는다. 이팝나무꽃은 보기에도 좋고 향기 또한 좋다. 큰 고목의 이팝나무꽃 모습은 멀리서 바라보면 때 아닌 흰 눈이 온 듯이 보인다.

이팝나무란 이름도 이밥(쌀밥)에서 왔다. 꽃이 많이 피면 벼농사가 잘 돼 쌀밥을 원없이 먹게 된다고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꽃들이 사발에 가득히 담은 흰 쌀밥처럼 보여 이밥나무라고 했으며, ‘이밥이팝으로 변했다고 한다. 또한 쌀밥나무라고도 부르는 나무 중의 서민들의 나무이다.

그러나 이팝나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다른 의견도 있다. 이 꽃이 여름에 들어서는 입하에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 불렀고 입하가 연음되어 이파또는 이팝으로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예전에는 이팝나무를 보고 한 해의 농사를 점치기도 하였는데, 흰 꽃이 많이 피는 해는 풍년이 들고, 꽃이 많이 피지 않는 해는 흉년이 든다고 믿어왔다. 대개 이팝나무 꽃이 필 무렵에는 모내기를 하게 되는데, 이 때 땅에 수분이 충분히 있으면 나무는 별 장애 없이 꽃을 잘 피워 낼 것이고, 또 농사도 모내기에 충분한 생육조건이 조성되어 그 해 농사가 풍년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신처럼 생각되는 일이지만 실제로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가 담겨 있는 말이다.

이팝나무는 남부 지방에서 자라는 낙엽성 교목이다.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이 나무의 고향은 전라도, 경상도와 같은 따뜻한 남쪽이고 해안을 따라서는 서쪽으로는 인천까지, 동쪽으로는 포항까지 올라온다. 그러나 요즘 사후관리를 잘 하면 중부내륙에서도 자란다. 이웃하는 일본, 대만과 중국에서도 자라지만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한번 핀 꽃은 20일이 넘도록 은은한 향기를 사방에 내뿜으며 활짝 피었다가는 마치 눈이라도 내리듯 우수수 떨어지는 낙화모습이 또한 장관이다. 꽃이 지고 나면 꽃과는 정반대 빛깔의 보랏빛이 도는 타원형의 까만 열매가 열린다.

이팝나무의 학명은 ‘Chionanthus retusa’인데, ‘하얀 눈꽃이라는 의미의 합성어이다. 서양인들은 하얗게 핀 꽃을 보고 낭만적으로 흰 눈을 생각했지만 우리 조상들은 흰 쌀밥을 생각했으니 가난의 산물이라 느껴진다. 이팝나무꽃에는 어려웠던 우리 조상들의 생활을 보여 주는 전설이 있다.

옛날 경상도 어느 마을에 열여덟 살에 시집 온 착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시부모님께 순종하며 살았지만 시어머니는 끊임없이 트집을 잡고 구박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제사가 있어 며느리는 조상께 올리는 쌀밥을 짓게 되었다. 항상 죽만 쑤다가 모처럼 쌀밥을 지으려니 혹시 밥을 잘못지어 시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을까 봐 겁이 난 며느리는 솥뚜껑을 열고 밥에 뜸이 잘 들었는지 밥알 몇 개를 떠서 먹어 보았다.

그러자 공교롭게도 그 순간 시어머니가 부엌에 들어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 제사에 쓸 멧밥을 며느리가 먼저 퍼먹는다며 온갖 구박과 학대를 하였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며느리는 그 길로 뒷산에 올라가 목을 메어 죽었고, 이듬해 이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에서 나무가 자라더니 흰 꽃을 가득히 피워 냈다. 그리하여 이밥(쌀밥)에 한이 맺힌 며느리가 죽어서 된 나무라 하여 동네 사람들은 이 나무를 이팝나무(쌀밥나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쌀이 남아돌아 걱정인 요즘, 이팝나무꽃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나무에 핀 꽃을 보고 밥을 생각하며 허기진 보릿고개를 넘었던 옛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렇게 쌀밥을 닮은 꽃들(이팝나무, 조팝나무 등) 중에는 아련한 눈물이 함께 묻어 있다고 본다. 이팝나무 꽃이야말로 향토적이고 서민들의 꽃으로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으면 좋겠다.

경주 황성공원의 동쪽 입구 시립도서관 부근에 약 15년 전까지만 해도 나무의 나이가 약 400년 정도의 큰 이팝나무 노거수가 명물로 자생하고 있었는데, 그 나무가 꽃을 피웠을 때의 아름다운 모습은 과히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관리소홀로 이팝나무 노거수는 고사하였으며, 현재는 약 30년생의 이팝나무를 후계목으로 심어 놓았다. 언제 자라서 그 당시 모습의 이팝나무꽃을 피울지 안타까울 뿐이다.

앞으로 경주 주변의 교통 여건이 좋은 나지막한 산을 선정하여 이팝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어서 시민들의 휴식공원으로 조성하고 이팝나무축제를 개최한다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 봄을 장식하는 이팝나무꽃 가로수길을 꼭 한번 걸어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보기를 권하고 싶다.

최재영 (신경주지역개발(주) 대표이사/조경학박사)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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