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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남산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청림 이영백수필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06월 11일(금) 14:32

ⓒ 황성신문

ⓒ 황성신문
경주 개남산(介南山, 80m)은 본래 이름이 남산이었다. 남산은 흔히 남쪽에 위치해 있다고 남산이라 했다. 그러나 경주 남산은 남산이 아니다. ‘금오산(金鰲山, 468m)’이라 한다. 서울에 남산도 남산이 아니다. ‘목멱산(木覓山)’이라 한다. 이렇게 본래 이름이 있는데도 아직까지도 왜식이 남아서 남산이라고만 부르고 있다. 심지어 어느 시의 구()이름도 동····중구 등이라 부르고 있다. 모두가 일본식이다. 불국사지역의 남산은 남산이 아니고 개남산이 됐다. 우리말 앞에 자가 붙으면 좋지 않다. 개복숭아, 개망초 등이 그렇다.

경주시 시래동 아래시래 마을 뒤편에 높이 80m 정도 높이의 산이 있다. 신라가 도읍을 정하려할 때 그 산을 남쪽에 있는 산인 남산으로 정하려고 했다. 산의 형상이 기러기가 날아가는 형국이라 산 동편에다 못을 막았다. 서편의 바위는 정으로 구멍을 내어 쪼자내었기에 쪼진바위(혹은 쪼진뱅이)’라 했으며 그로인해 산의 지세를 돋우었다. 그러나 그래놓고 보아도 부족하고, 산세가 너무 약해 지금의 경주 시내 쪽으로 가서 남쪽의 산으로 정했다. 그런 연고로 이 산은 도읍지에 도움이 못돼 개남산으로 굳어졌다.

오늘 날 드론타고 하늘에서 개남산을 내려다본다면 동서남북이 모두 보이는 작은 구릉이다. 동쪽으로 조양 못, 남쪽으로 시래동의 아래시래 마을, 서쪽으로는 쪼진바위가 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조양동의 자연마을인 대추밭이 있다.

동쪽, 조양못이 위치해 날이 가물 때 논에 관개하기 좋게 물을 채워두었다. 오늘날 강태공이 모여들어 낚시 드리우기 좋아하는 곳이다. 예전에는 조양못 북편 둑에 벚꽃이 만발했다. 그 시대의 청춘남여들이 데이트 코스가 됐던 곳이다. 요즘은 벚꽃나무가 모두 사라지고 민둥한 못가로 돼버렸다.

남쪽, 요즘 아래시래 마을에는 어쩜 그리 절이 들어서는지 이상스러운 마을로 바뀌고 있어 걱정이다. 예전에도 절 하나는 있었다. 마을에는 배··박 씨네들이 주로 많이 살았는데 이제는 들어온 성씨가 많다고 한다. 배산임수로 마을 앞에 억설로 내가 주장하였던 대로 시내버스가 다니는 스트레이트 도로도 났다. 포장 되어서 생활의 편의성을 도모했다. 경주까지 시내버스도 다닌다. 마석산에 올라 내려다보면 살기 좋은 마을로 보인다.

서쪽으로는 보칠보(寶七洑)’가 있어 옛날에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았는데 요즘은 소를 기르면서 우사가 들어섰다. 또 앞벌 논바닥에 경주 우시장이 들어서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이익이 생기겠지만, 환경적으로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쪽으로는 대추밭 마을이 있고, 산기슭으로 보면 암자가 보인다. 이 암자 중에 둘째 누나 제를 모신 곳도 있어서 남달리 그 앞으로 지나기가 애달프고 슬프다. 쉰다섯에 일찍 돌아가셨기에 더욱 그렇게 서럽고 서럽다. 이제 큰형, 둘째형, 셋째형, 큰 누나, 둘째 누나, 다섯째 누나 등 모두 여섯 분이 저 세상으로 갔다. 물론 일찍 갈 수도 있고, 적당히 살고 가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길게 오래 사는 사람은 우리 집안에 아무래도 없다. 할아버지 쉰일곱, 아버지 일흔여섯, 어머니 일흔셋, 큰형 일흔하나, 둘째형 일흔아홉, 셋째형 예순다섯, 큰누나 여든하나, 둘째누나 쉰다섯, 다섯째누나 세 살 등이다. 막내 누나를 빼고 보면 평균 69.9세로 장수집안은 아니다.

신라시대에 만약 이곳을 도읍으로 정했더라면 하는 언연 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랬으면 분명 이변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협소한 구역이라서 궁궐과 각종 행정관서가 들어서기에는 분명 좁았을 것이다. 천 년 신라의 수도가 그리 협소해서야 되겠는가? 정하지 않은 현명한 혜안을 가지신 분이 누군가가 있었기에 신라가 천 년(992)까지 유지된 것은 다행이다.

개남산은 남산이 못 돼서 ~남산이다. 개남산은 그저 경주분지 중에 가장자리에 낮은 구릉 일 뿐이고, 자연 속에서 그냥 존재할 뿐이다. 어렸을 때는 그 산에 우리 문중 산소가 많아서 묘제지낸 후 묘사 떡 얻어먹은 것만 기억에 새롭다.

북쪽, 근세조선시대에 조역이라 하여 역참이 있었다. 관원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말먹이고, 마패에 나타난 말의 수에 따라 말을 동원해 주던 곳이다. 역참 관원 중에는 역졸이 살아서 업신여겼다. 요즘은 교통이 편리한 것이 좋지만, 과거에는 역참에 역졸들이 살면 상반(常班)에 속하기 때문에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까지 좀 낮게 봤다.

지금 와서 보니 조양 못이 있어 경관을 빛내어 준다. 교육대학 다니던 때 그래도 아랫동네 어른들 모시고 갈매밭 구입해 경주여자정보고등학교를 유치했던 것이 참 무모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개남산이 있다. 그렇지 못했더라면 지금도 비포장에 아무것도 없는 그런 자연부락으로 머물고 있는 낮은 구릉일 뿐이다. 정말 개~남산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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