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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 박사
윤 해 수 | ⓒ 황성신문 | -지난호에 이어
동해안(東海岸)으로 오가던 사람들의 휴식(休息)과 숙식(宿食)을 위해 나라에서 세운 원(院)이 추령재 아래에 있었다고 하여 추원(楸院), 또는 원(院)거리라고 한다.
이 일대(一帶)를 모차골이라고도 하는데 황룡동 84번지에 추원모차골회관이 있다. 왕이 이 마을에 행차(行次)했는데 이때 한번 왕을 본 마을 사람들이 사모(思慕)하는 마음이 극진(極盡)하여 모차곡이라 했다고 하기도 하며 험한 산길을 넘어 마차(馬車)가 다니는 길이 있었다고 하여 마차곡(馬車谷), 또는 마차골이라고 했다는 설(說)도 있다.
기르던 매로 사냥을 했다는 매봉재가 모차골 서쪽에 있는 해발(海拔) 430m인 산으로 바위가 새이(상여)처럼 생겼다는 새이바우가 있어서 속칭(俗稱) 새이바우산이라고도 한다.
모차골 서쪽 골짜기가 깊고 숲이 우거져서 대낮에도 어두운 곳이라하여 어더분골이 있고 어더분골을 지나면 피(잡풀)가 많아던 논이 있었다는 골짜기라 하는 피밭골도 있다. 서남쪽 골짜기는 은금이라고 하는데 은(銀)을 캣다고 하는 곳이라고 하고 어더분골과 모차골 사이에 외지배이라는 지명(地名)이 있는데 이는 은금이에서 은(銀)을 몰래 캐어 가져가는 것을 보고 ‘도둑놈 잡아라’ 라고 소리쳐 외쳤다는 곳이라하여 이름 했다고 한다.
사시목 또는 사시메기는 황룡동(黃龍洞)에서는 가장 큰마을이며 사항(獅項)이라고도 하는데 4호선 국도변(國道邊)으로 하여 절골로 가는 길목에 있다. 표충사(表忠寺) 앞의 산이 마치 사자 머리와 같으므로 머리의 아랫 부분(部分)에 해당한다고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하기도 하며 옛날에 사심(사슴)이 많이 서식(棲息)하고 있어서 사심(사슴)을 사냥하는 길목이어서 사심목(사시목)이라 했다고도 하는데 추령재(楸嶺岾)를 지나 문무대왕면 장항리((獐項里)와 연관성(聯關性)이 있다면 후자가 더 설득력(說得力)이 있는 것도 같다. 사시메기 동쪽에는 대마(大麻)를 재배(栽培)했다는 삼밭골이 있다.
경주시 황용동 169번지인 사시메기 동쪽 산마루에 표충사(表忠寺)가 있는데 연꽃이 필 무렵 봉우리 형국(形局)의 가운데에 옛날에 표충사(表忠寺)가 있었는데 허물어지고 주위에 무너진 탑조각만이 흩어져 있는데 그곳에 새롭게 절을 지어 표충사(表忠寺)라고 한다. 이골짜기를 표충사(表忠寺)가 있는 골짜기라하여 포치잇골 포충곡이라고도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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