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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04월 02일(금) 15:30

↑↑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이영백 수필가
ⓒ 황성신문
사람은 물을 먹어야 산다. 요즘은 곳곳마다 상수도가 설치돼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온다. 그 옛날 시골에 살다보면 우물이 아주 중요했다. 태어난 동네에 유명한 우물이 하나 있었다. 홰나무 우물이다. 그 마을에 살기 전부터 우물은 있었다. 동사(同舍)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고, 우물곁에는 학자수(學者樹)가 마을의 당수나무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섣달그믐날 밤에 재미로 잠을 자면 눈썹이 샌다고 했다. 그 말에 놀라서 밤새 잠을 못 자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면 엄마는 장난으로 쌀가루를 발라서 눈썹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한밤이 지나고 정월 초하루 새벽 네 시에 밤새 우물 속에 촛불을 켜 두었다. 그 우물물을 정안수로 떠오는 수고를 결코 마다하지 않았다. 지극정성으로 부모가 자식 잘 되라고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조금 더 자라 서쪽 집으로 이사를 했다. 학자수우물이 멀어지고 가까이 약국 장 집 앞에 우물이 있었다. 그 우물물은 날이 가물거나 하면 잘 말라 버려서 장기적으로 두고두고 사용할 물이 부족했다. 넷째 형님이 나보다 다섯 살 위인데 참 번지러웠다. 어느 늦가을 날 형님이 우물가 시멘트흄관을 만들어 둔 곳에 걸터앉아 놀았다. 앉은 자리가 너무 깊이 있게 앉았다. 몰아치는 세찬 바람에 그만 우물 속으로 퐁당 빠져버렸다. 우물 속에서 사람 살려!”라고 고함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마침 지나가던 동네 참봉이 우물에서 무어라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우물이 그렇게 깊지는 않았다. 참봉은 논에 들릴 때 짝가래를 항상 가지고 다녔다. 가래의 날은 나무로 만들어서 사용은 형식적이고, 폼이었다. 멀리서 물고를 집적거리는 데 활용하기 좋게 만든 자루가 긴 나무 가래였다. 가래자루를 우물 속에 집어넣어서 타고 올라오게 해 형님을 그렇게 살려 주었다.

세 번째 집으로 이사했다. 서쪽대문 앞에 우물이 있었다. 물도 깊고, 물맛이 아주 좋았다. 우물물이 너무 좋아서 동네 사람들이 모두 건강했다. 우물물을 잘 이용할 수 있었다. 수시로 동네아낙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정(市井)이었다. 우물가에서 동네 이야기를 하고, 듣고, 옮기고, 따지고 결정하는 무척 좋은 장소였다. 심지어 빨래도 했다. 아버지는 그 물이 흘러내려 항상 물이 고인 자리에다 미나리꽝을 만들어 시골의 반찬거리도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 네 번째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는 밭 4천여 평만 있고, 우물이 아예 없었다. 사람 살려면 물이 우선이었다. 도랑물을 먹고 살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밭 북쪽에 집터를 잡았고, 밭 가운데로 길을 냈다. 밭 서쪽 둘레로부터 조양(朝陽)못으로 물이 흐르는 도랑이 있었다. 아버지의 예상으로 우물은 도랑물이 흐르는 곁에 우물을 파면된다고 생각했다.

머슴이 셋 있었다. 큰 머슴, 중머슴, 꼴머슴이라고 했다. 셋째 형과 넷째 형이 우물터를 잡고, 중머슴이 힘을 발휘해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우물을 만들 때 사용하려고 여러 가지 형태의 돌을 큰 머슴이 이미 구해다 놓았다. 흙을 제법 파기 시작하니 돌 가지고 담을 치듯이 자꾸 쌓아 아래로 내려갔다. 제법 사람 키를 넘기고 있었다. 우물로 판 위에다가 삼발이 나무세우고 도르래를 달아 흙 퍼 담아 오르기 시작했다. 흙 파낸 자리에 돌을 들여서 쌓아 내려갔다. 그 작업을 계속했다. 사람 키 한 길반부터는 물이 새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우물은 어른들이나 파는 것으로 생각하고만 있었는데 우물 파는데 왜 나를 부를까? 한편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우물 파는 속으로 내려가라는 것이었다. “몸피가 작아야 밑에 흙을 파내기가 쉽지. 제일 작은 막내가 내려가라!”고 명했다.

<다음호에 계속…>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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