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성공비결은 사물과 주변을 관찰하는 통찰력이다’라고 한다. 통찰력이 그들의 약 2000년간 이어진 이산의 아픔을 이겨낸 유대인의 생존 본능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람을 알아보고 판단하는 능력’도 유대인의 생존 본능 때문이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은 쫓기며 살아오면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의 모든 특징을 기억하고 상황에 대한 주의를 기울였다.
유대인들이 이러한 능력을 갖추게 된 이유는 정주하지 못하는 그들의 상황 때문이었다. 고난의 시대에 그들은 한 번도 정주(定住: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삶)할 곳을 갖지 못했다. 또 한 가지 유대인들의 특출한 능력은 대부분 대도시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인간이 바라는 삶의 목표인 ‘경제적 안정과 육체적으로 안락한 수준의 삶을 추기하기 위해’라는 목표는 유대인들에게는 사치일 뿐이었다. 그들은 땅을 소유하고 재산을 모으게 되면 몰수당하고 추방당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였다. 그들의 직업은 특히 고리대금업, 부동산업, 의학, 법학, 컨설팅에 종사했다. 이런 직종은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20세기 초 유대인들의 95% 정도가 대도시에 살았다고 한다.
나라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대인들을 매우 강하게 탄압했고 이러한 탄압이 유대인들에게 장점이 되었다는 것이 역설적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 빠른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쌓이고 쌓여 아주 높은 수준의 사고능력을 형성했고, 쓰라린 경험들 덕에 그들은 절대로 편안하게 안주할 수 없는 운명이란 걸 깨닫게 된 것이 그들의 성공비결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이 논리에 인간이 갖는 가장 큰 약점은 적응이 되면 편안하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 적응이 개성과 지성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쓰디쓴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에 답은 바로 ‘불편함의 원칙’이다. 여기에서 유대인의 성공과 한국인의 성공에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대도시를 선호하고 어울려 살기를 선호하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 질경이처럼 질긴 최악의 환경 속에서 견디어낸 민족의 저력 세계 9위의 경제 대국의 위용을 자랑하는 한민족의 기적을 이루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의 지능을 계발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만족도, 경제적 안정감도, 육체적 안락함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면 안 되며, 매일매일 앞으로 나아가면서 육체와 정신이 방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하고자 한다. 멍게는 뇌가 있을까? 멍게는 동물인가 아니면 미역과 같은 해조류인가? 멍게의 학명은 Halocynthia roretzi, sea pineapple 또는 sea squirt이다. 멍게는 부드러운 속 살을 가지고 있으며 바깥은 딱딱한 껍데기를 가지고 있다. 유생의 시기에는 올챙이 모양으로 헤엄쳐 다니지만 성체는 바위에 붙거나 해저 바닥의 흙 속에 파묻혀 살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다. 성체가 되면 유생 시기에 지니고 있던 자신의 뇌를 소화 시켜 버린다. 유생 시기에는 뇌를 이용해 먹이를 열심히 찾아다니지만, 성체는 어딘가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고 흘러들어오는 먹이만 잡아먹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많은 뇌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즉 움직인다는 것은 모든 주변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해석하고, 진행하는 과정의 일어나는 일들을 예측하고 해결하는데 뇌가 필요한 것이다.
뇌 과학에서 ‘생각하는 것’을 ‘운동하는 것’과 같은 뜻으로 본다. 운동을 위한 뇌의 프로세스는 ‘감각-신경-뇌-신경-운동’로 진행되어 전 과정을 수행한다. 생각은 운동을 뺀 ‘감각-신경-뇌-신경’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의 일생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해당된다. 청소년들의 닭장 같은 교실에서 움직임이 없이 수년간 뇌 활동을 한다는 것은 바로 뇌를 스스로 망가트리는 것이며, 어르신들과 치매 환자도 마찬가지다. 머리를 많이 쓰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운동’을 하는 것이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은 뇌를 자극하여 뇌 건강에 도움을 준다. 이는 인간이 안주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청년 시절의 다른 곳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불특정 다수의 생각들을 논리적으로 바꾸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바로 실험실의 쥐에서 벗어나 떠돌아다니는 쥐가 되는 것이다. 다양한 환경 속에서 풍부한 세계를 즐기는 변화하는 다양한 자극을 즐기는 것이다. 새로운 장소는 시각적인 자극, 육체는 감각을 날카롭게 만들어 변화에 적응하는 방어 기제로, 사물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단계와 창의적인 사고의 단계로 발달시켜 주기 때문이다. 창의성을 폭발적으로 끌어 올리고 폭발시키고 싶다면 따뜻한 보금자리를 떠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란 다른 곳으로부터 온 사람이다’ ‘자신의 고향에서 환영받은 예언자는 없다’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아웃사이더가 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한곳에 얽매이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을 정도로 편하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한곳에 머무르지 말고 항상 정신적, 육체적으로 방랑하라.
편안함을 느끼며 안주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