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토함산 아래 소한들 달빛 | ⓒ 황성신문 | |
| | | ⓒ 황성신문 | 신라달밤의 달빛은 다르다. 신월성 옛터에 밤 피리소리나면 울컥 향수에 젖고 만다. 하물며 그 소리에 풀벌레도 합창한다. 신라의 달빛을 느끼려면 경주로 오시오! 신라의 달빛이 곧 경주달빛이니까. 함께 소곤거리는 신라 야사(野史) 들으며 하늘의 별 개수를 헤아린다. 월정교 딛고 건너면 죽어 신이 사는 곳인 남산 오르는 “왕의 길”이다. 그곳 경주 달빛도 참 좋다.
태어난 곳 동해남부선 불국사기차역(현재 폐역)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신호대 마을, 시래리 동사마을 330번지가 안태본이다. 그곳은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으로 내가 열 번째로 세상의 빛을 보았다. 전기도 안 들어오고, 오로지 하늘의 달빛이 비춰 주던 그런 시절에 살았다. 밤하늘 은하수 별들이 모인다. 마실 나선다.
저녁 한 술 뜨고, 토함산 동녘을 바라보면 개밥별이 반짝인다. 불국사지나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자동차 불빛이 도깨비불처럼 서른세 굽이 토함산 오르는 불빛이다. 마음으로 뒤 따라 간다. 별 찾으러 간다. 경주 달빛이 더욱 좋다.
신라 선인들이 살았던 고장! 네 번째 집으로 이사하였다. 목수인 아버지의 은혜로 같은 마실에서 네 번째 집으로 이사 갔다. 그곳은 울룩배미 새보다. 일곱 살 때부터 억지스럽고, 울고 싶었던 나의 학창기를 보낸 곳이다. 아버지의 교육철학으로 까딱 했으면 “하늘 천, 따지”만 배웠을 뻔하였다. 천자문, 동몽선습, 계몽편, 소학, 명심보감, 통감, 대학 등 한문책 이름을 들어는 보았는가? 살면서 모두 잊은 그 문장을 달빛에서 다시 찾는다. 달빛에 한문문장이 보인다.
눈 내린 논벌 소한들 논바닥에는 벼의 그루터기만 남은 흔적이다. 전기 없던 시대에 형설지공(螢雪之功)으로 학창기를 보내었다. 그곳이 왠지 지금에 와서야 더욱 좋다. 그곳은 남이 농장경영 한다. 그곳에 들리면 닭 쫓던 개가 된다. 달빛 보고 개가 짖는다. 혹 나그네를 양상군자로 보는가? 나는 고향 마실 찾아온 사람일 뿐이오. 개야 직지마라. 고향이 고픈 사람이란다.
신라의 달빛, 경주의 달빛은 뇌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늘 그렇게 산다. 산그늘 내린 고향을 다가간다. 산그늘 길게 드리워지고, 불국사 저녁예불 종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아흔다섯 둘째 형수님 집에 들려본다. 움직이는데 조금 힘드시지만 막내 대련(도련님) 왔다고 무언가 덥히어낸다. 그 정성이 달빛에 더욱 빛난다.
밝은 전깃불에 익숙하여 흐릿한 달빛의 고마움을 잘 모르고 사는 현대인들이다. 조금 어둑하면 어떤가? 화려하지 않아 덜 밝은 달빛에 글 읽는다. 아마도 그날은 먼 신라시대 달빛을 경주의 달빛으로 가져 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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