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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서정시인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15년 02월 03일(화)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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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인은 누굴까. 서정미 라는 느낌에서 오는 부드럽고 감칠맛을 연상하 여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용맹스런 고구려 2 대왕인 유리왕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 시인이 다. 이 황조가는 그가 떠나간 여인 치희를 그리 워하며 지은 노래다. 유리왕은 원 부인인 송 씨 가 죽자 두 여자를 후궁으로 들여 장가를 갔는데 그중 한 여인이 화희고 다른 여인이 치희다. 화 희는 골천인의 딸이었으며 치희는 한나라 사람 의 딸이었다. 뭐라 해도 왕을 사랑했던 두 여인 은 유리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서로 반목 하며 매우 사이가 좋지 못했다고 한다. 보다 못 한 유리왕은 동, 서에 궁을 2개 지어 하나는 화희 에게 다른 하나는 치희에게 주어 서로 싸우지 못 하게 하지만 조금 사는 곳이 멀어졌다고 해서 싸 우지 않을 두 여인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유리왕이 사냥을 나가 7일간 돌아오 지 않는 일이 있었다. 마침 이때가 기회다 생각한 화희는 평소 유리왕이 총애하던 치희를 찾아가 매 우 호되게 꾸짖는다. 너는 한나라 사람으로 그 신 분이 미천 한데 어찌하여 이리도 무례하게 구는 가? 그 말을 들은 치희는 수치심과 한스러움에 당 장에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다. 사냥에서 돌아온 유리왕이 애첩 치희를 찾지만 치희의 모습은 모이 지 않고 그 사정을 묻고는 단숨에 말을 달려 치희 를 데리러 치희의 친가에 당도하지만 이 미 모욕 감과 수치심에 화가 난 치희는 유리왕의 만류에도 결국 친가에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돌 아오는 길에 유리왕은 한 쌍의 꾀꼬리를 보고 황 조가를 지어 불렀다. 유리왕이 치희가 오지 않음 을 슬퍼하며 지은 노래가 바로 황조가다. 고대인의 이별의 서정이 소박하게 묻어나는 황 조가를 음미하다 보면 애달은 순수함도 순수함이 지만 수준 높은 사회였다는 생각도 따라서 하게 된다. 변 사또같이 수청을 들라 하여 얻을 여인의 마음이 아니며 또 억지 춘향으로 여인의 마음을 산다하여 여인을 얻은 것이 아니란 것을 속 깊이 그들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왕조차도 사랑 문제 에는 차도가 없으며 가슴앓이를 어쩔 수 없이 하 는 세속이라 한다면 삶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는 건강한 사회라 하여도 가히 틀리지 않는다. 천하를 호령하는 군주도 사랑 앞에서는 바람 곁 에 둔 호롱불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흡족하게 한다. 감내할 내면을 가지며 그로 성찰과 용서도 같이 존 재함이다. 사랑에는 왕도가 없으며 여인의 의향을 중시 하였다는 느낌에 나도 따라 그윽함으로 외로 울 지경이다. 힘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힘이 능사가 아닌 고독을 말하고 있다. 심연의 고독을 말하는 건 강한 사회에서는 남녀가 자율적으로 사랑하고 또 한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하였을 것이다. 고구려 사람들은 무사가 대접받는 사회였다. 어느 때 전쟁터로 향할지 모르는 전사들은 그만 큼 여인의 향기가 더욱 간절하였을 것이다. 승리 가 곧 출세를 의미하는 나라, 평민 온달도 장군 으로 등극하여 공주와 결혼을 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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