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방죽더미에도 꽃피다 | ⓒ 황성신문 | |
| | | ⓒ 황성신문 | 어린 날 시래천이 형산강 상류인 줄도 새카맣게 모르고 살았다.
그냥 방죽은 마을에서 쓰레기 갖다버리는 곳인 줄만 알았다. 특히 열무ㆍ배추 씨 수확하고 그 쭉정이ㆍ티끌ㆍ검부러기 등의 불용물을 방죽에다 갖다 버렸다. 그때만하여도 쓰레기를 그렇게 버렸다. 그런 행위를 하고도 괜찮다 하고 살았다.
시래천 방죽에도 봄이 쏟아져 내렸다. 누가 그랬느냐고 원죄를 밝히려는 듯 열무ㆍ배추 쭉정이 등 버린 것을 기억시키려고 꽃이 피었다. 비록 쭉정이이었지만 무더기로 버린 더미 속에서 싹 틔어 장다리꽃을 피운 것이다. 방죽에서 살아난 배추는 짙은 노란색이요, 열무는 연한 보라색으로 물들이어 봄빛의 장관을 이룬다. 이른 봄 흰나비ㆍ노랑나비가 장다리꽃 정받이하려고 팔랑인다.
어쩌면 사람들이 열무ㆍ배추 쭉정이 등을 저네 집마다 거름 터에 버렸다면 이렇게 예쁜 장다리꽃 핀 것을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장다리꽃으로만 알았는데 요즘시대에 와서 그 꽃 이름을 “유채꽃”이라 부른다. 본래 봄소식은 제주도 성산포 남녘에서부터 들려온다. 라디오나 TV뉴스에서 유채꽃 노란색으로 봄이 왔다고 전국적으로 봄빛소식 전령을 내보내어 들썩인다.
마을 앞 열무쭉정이 등 버린 더미에도 봄이 무르익어서 장다리꽃이 피었다. 오랜 세월동안 농사짓고 늘 바삐 사느라고 그런 풍요한 꽃 풍정마저도 못 느끼고 살았다. 강가 논밭에 엎디어 불국사기차역에 내린 봄나들이 관광객을 참 하릴없는 사람들이라고 빈정거렸다.
세계관광지 불국사 오르는 가도(街道)에 벚꽃이 만발하였다. 조양못 둘레에 천연색 양산 펴들고, 벚꽃놀이 하는 신여성들을 내가 그렇게 못하고 살아가니 비꼬며 살던 시절이다. 자기들은 관광하지 못하면서 전국에서 관광하러 오는 손님들을 비꼬면 안 된다. 내가 못하니 심술보가 터진 것이다.
마을방죽에 장다리꽃 피는 것에도 감사하며 일부러 돈 들여가면서 봄나들이는 못하지만 마을 앞 유채꽃 구경하는 것쯤으로 참 자족할 뿐이다.
갖다버린 열무ㆍ배추 씨에서 장다리꽃 피는 것은 “봄맞이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채꽃 구경이라도 좀 하라”는 듯 쓰레기더미에서 저절로 꽃이 핀 것이다.
방죽의 유채꽃에는 노랑나비, 흰나비를 불러 모으고, 호랑나비까지 찾아오는 마을이다. “멀리 토함산 중허리 불국사로 가는 가로수에 벚꽃이 핀 것도 봄을 알고 살아라.”는 듯 방죽의 쓰레기 더미 속의 유채꽃이 대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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